연맹소개

연맹소개

1900년대 이전

1577년 임제의 남명소승에 최초의 한라산 등반기가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영실 존자암을 거쳐 남쪽 절벽을 올라 한라산 정상에 올랐으며 남벽으로 하산 후 두 타사를 거쳐 서귀포 방면으로 하산했다고 했다.

1601년 선조 34년 김상헌 어사와 제주 판관 이종일 등과 한라산을 등정하였다는 기록이 김상헌의 남사록에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백록담에서 한라산신제를 봉행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한라산신제는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지금의 산천단(제주시아라동)에서 도민체육대회 개최시 봉행 되고 있다.

 

1608년 4월 이건의 제주풍토록에 의하면 제주 판관 김치와 이효성, 정기수 등이 군민을 거느리고 한라산을 등정하였다고 했으며, 1651년 어사 이경덕이 한라산을 등반하고 한라산의 신비로움을 극찬한 기록이 제주목사 이원의 탐라지에 기록되어 있다.

 

1702년 이형상 목사의 한라산 등반 1841년 이원조 목사의 한라산 등반기에는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남극노인성(국운융성과 장수를 기원하는 별)을 보기 위해 한라산을 올랐다고 전해 진다. 아울러 토정 이지함이 남극노인성을 보기 위해 한라산을 올랐다고도 한다

 

1875년 3월 27일 고종 10년 면암 최익현 선생이 제주도에 기거할 당시 제주 선비 이기온과 같이 한라산을 등정했다고 한다. 선조들의 한라산 등반기록에 나타나는 지명들을 보면 영실 존자암, 선작지왓(모새밭), 죽성마을, 방선문, 두타사, 백록담, 노로오름 등이 많이 언급됨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지역들이 등반코스로 이용돼 왔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의 영실 등반코스, 관음사 등반코스의 효시로 볼 수 있다.

1900년대

1905년 7월 일본인 시하삼희(市河三喜)가 당시 19세의 나이로 미국인 앤드슨과 함께 한라산 등반을 하였다는 일기가 남아 있으며, 1935년 일본인(당시 학생 경성 제대 산악부) 천정일씨가 한라산 적설기 등반 답사차 단독 등반을 하면서 코스 및 기상상황을 세밀히 관찰하고, 당시 제주도 영림서에 협조 의뢰하여 용진각에 개미등 소옥(지금의 대피소)이 지어졌고 이 것이 곧 한라산 대피소 제 1호인 셈이다.

그리고 1935년 12월 천정일(일본인) 대장으로 경성제대 산악부 대원 9명이 1936년 1월 사이에 한라산 적설기 등반을 하였으며, 대원 중 마에가와 도시하루가 피로동사 하여 한라산 조난 제 1호로써 기록되었고 지금도 용진각에는 그의 비석이 있다. 한편, 이 등반은 겨울 한라산 최초의 등정기록이기도 하다.

 

“9명으로 구성된 경성제대등반대는 적설 2미터의 삼각봉사면을 힘들게 횡단, 용진굴대피소로 내려갔다. 지금은 없어진 이 대피소는 봉래천 가까이에 위치한 통나무집이었다. 12월 31일 두 대원이 장구목계곡으로 정상서벽루트를 정찰한 후 귀환하고 다른 대원들은 왕관릉으로 백록담에 이르러 캠프를 건설했다. 정상에는 오르지 않고 일부대원 잔류, 마에가와 등은 대피소귀환. 1월1일 날씨는 흐린 뒤 폭풍설. 대장과 마에가와 등 4명이 장구목계곡을 소행해 서벽으로 등정에 성공, 백록담캠프에 있었던 대원들과 합류 후 일부는 대피소로 내려가고 대장과 마에카와 등은 캠프에 잔류했다. 바람은 밤이 깊어 갈수록 기승을 부려 순간 최대초속 40여미터, 천막이 찢어져 나가고 지주가 부러지고...잠을 설친 초하룻밤이었다. 이튿날도 폭풍설. 대피소서 올라온 대원과 캠프대원 일부 교대 마에카와 잔류. 다음날 예정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1월3일 여전한 폭풍설 속에 철수. 하강도중, 마에카와는 왕관능의 부채꼴사면을 활강하는 마지막 모습을 남긴 채 눈보라속에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췄고, 최후미 대원이 대피소에 도착한 뒤에야 그의 실종을 알았다.
4일간의 걸친 수색은 뒤에 제주시에서 올라온 지원대가 합세, 일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무위로 끝났고, 시체는 눈이 녹은 5월 들어서야 참으로 어이없는 지점에서 발견됐다. 몇 번이나 수색대가 왔다갔다했던 곳에서 불과 2미터 떨어진 잔설 속에 스키를 신은 채 넉 달 동안 자고 있었던 것이다“

1946년 2월 한국산악회 적설기 한라산 등반대가 조직되어 미국인 3명 등 19명으로 대원을 편성 하여 처음(한국인으로는 공식)으로 등반을 하였으며, 1946년경 당시 제주 농업 중학교 학생들이 교사와 더불어 산발적으로 등산을 하였다.

 

1948년 1월 한국 산악회 제 2차 한라산 적설기 등반대가 한라산을 등반하였으며, 그 해 4월 제주도 4.3사건으로 약 6년 간 입산 통제 되었다가 1954년 9월 21일 해제되었다.


1954년 당시 입산통제 기간 중 부종휴씨, 안흥찬씨, 김종철씨 등 몇몇 산악인에 의해서 간간이 등산을 하였다. 한라산 입산통제 기간 중 관계당국의 허락을 받고 입산할 경우 무장경찰이 직접 동행, 호위를 했다.(자료제공, 안흥찬)

그리고 1956년 신성여고, 제주여고 등의 학생들이 교사의 인솔로 오늘날의 등산형식으로 등반이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도내 모든 학교 등산의 연례행사로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 부종휴, 이기형, 안흥찬, 고영일, 김종철, 김현우씨 등)

1960년대

한라산 입산 해제와 더불어 연중 한라산 등반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육지부의 각 산악단체와 학생산악부의 한라산 등산 시 각종 조난사고가 빈번하자 도내 몇몇 산악인들 가운데 한라산 조난구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61년 5월 14일 우리나라 최초의 적십자사 제주지사 소속 산악안전대가 발족했으며 초대 대장에 김종철씨가 선임됐다. 제주적십자 산악안전대의 창립으로 인해 제주도 산악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제주적십자 산악안전대는 한라산 등산로 개척과 등산 안전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제주도 산악계의 주춧돌이 되었다.

 

1964년 7월 21일 제주도에서는 처음으로 제주 산악회가 창립되었으며, 초대 회장에 홍정표씨가 선임되어 본격적인 산악활동이 시작되었다.

1967년 한라산우회가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부종휴씨가 선임되었으며, 학술분과를 두고 도내 동굴답사 및 식물조사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같은 해 도내 최초로 오현 고등학교 산악부가 창립되어 학생 산악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1967년 5월 21일 제 1회 한라산 철쭉제가 제주 산악회의 주최로 개최되어 산악인구 저변확대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1968년 7월 10일 통일에 대한 민족의지의 발현 및 고취, 다각적인 산맥 조사, 국토 중 고봉이 밀집해 있는 태백 및 소백산맥의 등행로 개척 및 조사, 각 도 연맹의 산행 연대를 목적으로 하는 국토종주삼천리 제 1차 계획이 제주도 마라도에서 시작을 계기로 제주 산악회는 대한 산악연맹 가맹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국토종주삼천리 제 1차 년도에 박요찬, 김용구, 오상철, 안흥찬, 김현우, 김병일, 홍정표, 문화자, 방경옥, 이정덕, 양하선,고인지, 김지훈, 한철언, 손성권, 김승택, 이창흠씨 등이 참가했다.
국토종주삼천리행사를 제주도에서 시작하게되는 계기로 대한산악연맹으로부터 가입권유를 받았고 1969년 대한 산악연맹에 가맹했으며, 초대 회장에 안흥찬씨가 선임되었다.

1969년 1월 전국대학생 한라산 등반대회인 백설제가 제주대학 주최로 시작되었으며, 6년 후 행사가 폐지되었다

1970년대

1970년대는 한라산 등반코스를 본격적으로 개척하는 산행이 주를 이루었다.
제주시 - 천장사 - 어리목 - 윗세오름을 잇는 어리목코스, 1100도로에서 21림반을 지나 영실 병풍바위를 잇는 21림반코스, 어리목 산장에서 동어리목 계곡을 통과하여 장구목을 잇는 Y좌측 코스, 천왕사 석굴암 - 족은 두레왓 - 큰 두레왓 - 장구목을 잇는석굴암 코스, 관음사 - 구린 굴 - 왕관봉을 잇는 학사코스, 물장올 오름 - 어후오름 - 돌오름 - 사라오름을 잇는 물장올 코스, 남성대 - 돈내코 계곡 - 방아 오름을 잇는 남성대 코스 등이 개척되어 산악인들이 산행시 주로 이용되었다.

 

1970년 10월에는 한라산 등반로 점검, 자연보호 운동을 목적으로 한 제 1회 한라산 집중등반 대회가 시작되었으며, 그해 11월 16일 서귀포 산악회가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강치남씨가 선임 됐다. 서귀포 산악회는 1972년 제주도 연맹에 가맹하여 산악활동을 해오다, 1975년 10월 제주도 연맹에서 탈퇴하여 해산하였다. 그 해 6월에는 제주 산악회 10주년 기념 해외원정을 위한 자료 수집 정찰차 제주 산악회 김태열 총무가 대한 산악연맹 대만 옥산 등반대에 참가하였다.

 

1972년 9월 21일 한국 설암산악회가 창립하여 초대 회장에 강건씨가 선임되었고, 1976년 6월 30일 제주도 연맹에 가맹하였다.

1973년 4월 19일 서귀포 백록산악회가 창립하여 초대 회장에 현충남씨가 선임되었고, 1974년 5월 15일 제주도 연맹에 가맹하여 산남지역의 산악활동을 선도했다.

1974년 1월 13일 조국 통일과 산악인의 무사를 기원하는 제 1회 만설제가 제주 산악회 주최로 어승생악에서 개최되었다. 그 해 1월 17일 오현등고회가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안상옥씨가 선임 되었고, 1975년 5월 제주도 연맹에 가맹을 하였다. 같은 해 1월 `77에베레스트 원정훈련 지리산 동계훈련에 제주 산악회 3명이 참가하였으며, 같은 해 4월 표선 산악회가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정운홍씨가 선임되었고, 1975년 10월 제주도 연맹에 가맹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제주산악회 창립 10주년 기념 해외원정 등반을 도내 최초로 실시하였으며, 대장 김승택 외 3명이 대만 옥산 및 일본 북알프스를 등반하였다.

 

1974년 제주 산악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도내최초의 해외원정등반이 실시되는 뜻깊은 해였다. 2년간 해외원정을 준비해온 제주산악회 대만옥산, 일본 북알프스 원정대는 김승택 대장을 중심으로 장도에 올랐다.
5월 30일 김승택 대장 외 대원 4명은 5월 30일 저녁 6시 15분 제주 공항을 출발하여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6월 1일 3시 30분 김포공항을 통해 중화민국으로 갔다. 6월 2일에는 중화민국 산악협회의 도움을 받아 간단한 물품을 구입하였고, 6월 4일 아침 8시 등반을 시작했다. 등반도중 악천우로 고생을 하며 19시 30분경 아리산에 도착하여 고봉 산장에서 잠을 잤다. 6월 5일에도 비는 계속 내렸고, 오후 2시 45분 배운 산장에 도착하였다. 6월 6일 1시 30분 중화민국 옥산 정상에 도착했고, 오후 6시 30분 동보산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몇 일간 관광을 하면서 머무르다가 6월 18일 20시 30분 대판 공항에 도착 북알프스 등반 기점인 상고지에 도착하였다. 6월 19일 오후 1시 창악 정상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오후 5시 횡미 산장에 돌아왔다. 6월 20일 송본을 떠나 6월 21일 대판에 도착 몇 일간 관광을 하다가 6월 29일 대원 전원이 무사히 제주에 도착하였다.


1974년 5월 26일에 열린 제 8회 철쭉제는 1만여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등산객이 몰린 행사였다.
산상제가 열린 한라산 백록담에는 만여명의 등산객들로 만원을 이루었으며 단위산악회회원들이 전원 행사요원으로 투입되었다.

 

산행코스는 A 코스 (제주시지구) 어승생 ~ 만세동산 ~ 정상 ~
용진각 ~ 개미등 ~ 관음사
B 코스 (서귀읍지구) 성판악 ~ 진달래 밭 ~ 정상 ~
남벽 ~ 평지괴 ~ 돈내코
C 코스 (대정읍지구) 영실 ~ 윗세오름 ~ 정상 ~
남벽 ~ 평지괴 ~ 돈내코이며
1인당 200원의 입장료를 받았다. (※ 한라산국립공원 입산료 포함)

 

회원권판매는 제주시지구 원정로 라이카사 서귀읍지구 서귀포 일광사 대정읍지구 모슬포 KAL매표소에서 했으며 어승생, 성판악 영실입구에서도 현장 판매를 했다
각 코스 입구마다 경찰관(허가증)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입산증) 검사를 실시 했다.
집결 장소는 어승생 입구 ~ 당일 오전 8시까지(제주시지구) 성판악 입구 ~ 당일 오전 8시까지(서귀포지구) 영실 입구 ~ 당일 어전 9시까지(대정읍지구)까지 집결하여 등산을 시작했다.
행사는사단법인대한산악연맹제주도연맹이주최하고제주산악회 서귀포산악회 백록산악회가 주관했으며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한일소주 주식회사 태평양화학 동문그릇 대한항공 라이카사 남양문 화방송 대동여관이 후원했다.

 

행사의 진행은
대 회 장 ……… 안흥찬 (도연맹회장)
총 지 휘 ……… 김현우 (도연맹부회장) ……… 제주시지구
안전대책위원장 … 양하선 (제주시지구) 김철원 (서귀읍지구)
총 무 ……… 김태열, 강지연(경리) (제주시지구)
차순정(서귀읍지구)
※ 이하 서귀읍지구 행사의 부서는 “서귀포산악회”가, 대정읍지구 행사의 부서는
“백록산악회”가 주관한다.

기 록 ……… 이묘선, 강동근
사진 기록 ……… 이경서, 고인지, 고길홍
섭 외 ……… 홍석표 (보도기관) 양하선 (관계기관)
김용구 (산악단체) 이창욱 (관광단체)
박선홍, 신승행 (학교단체) 고윤삼 (군, 경)
기획 진행 ……… 김승택, 박훈규
사업 진행 ……… 양하선, 고진수

 

3. 산상제 부서
제 주 ……… 회장단 및 타산악회장
집 사 ……… 김용구 (서귀포산악회 1명)
축 단 ……… 이봉길, 강경수
설 상 ……… 김상수, 김용구
사 회 ……… 김승택

 

제 순
1. 축 단
2. 문 향
3. 헌 주
4. 제문낭독
5. 기 타

4. 철쭉여왕 선발부서
회원권 정리 ……… 이순희, 하재여
심사위원위촉 ……… 김태열
철쭉관 제작 ……… 진 강지연
선 이묘선
미 송영희
타미나 전계옥
철쭉여왕기념품 …… 김태열, 김용구
※ 기념품 운송담담은 추후 지시한다.

철쭉여왕 선발규정
① 철쭉여왕 후보 10명을 추첨한다.
② 추 첨 자 ……… 기관장 및 타산악회회장
③ 심사위원 ……… 위원장 : 이기섭 박사
위 원 : 현장에서 의뢰한다.
④ 철쭉여왕선발
㉮ 심사를 거쳐 진, 선, 미, 타미나 발표
㉯ 시상순서
㉠ 띠
㉡ 대 관 ……… 전년도 철쭉여왕
트로피 ……… 진 : 본 연맹회장
선 : 홍병철 명예회장
미 : 안흥찬 회장
㉢ 기념품 ……… ⒜ 태평양화학 Co : 화장품셋트 및 까운
⒝ 동문그릇사 : 스텐레스 식기 각 1벌
⒞ 라이카사 : 기념 천연색사진

 

5. 진행부서
안 내 장 ……… 김태열
프로그램 인사말 … 홍석표
프로그램초안 …… 기획부
포스타 초안
인쇄물발송 …… 총무부
현 수 막 ……… 양하선, 이봉길, 이순자
신문광고 ……… 총무부
방송광고 ……… 섭외부
회원권판매 …… 시내판매 ……… 김용구, 전 여자회원
현장판매 ……… 운행부서 참조
산상제게문 …… 김용구
휴대마이크 …… 허성록
시루떡제주 …… 김덕천, 허성록
돼지머리, 과일
향, 성냥, 제기 … 김상수, 이봉길

 

6. 운행부서
리 더 : 이 봉 길
서브리더 : 양 하 선
선 발 대 : 현 악 회
방송중계소전담 : 홍석표
의 료 : 이기섭박사, 도립병원
어승생임시본부 : 양하선, 이창욱, 고길홍
사제비지구 : 고윤삼, 고진수, 이경서, 홍순옥, 최순옥, 서향자
만세동산지구 : 박선흥, 신승행, 고인지, 채경은, 윤복자, 이순자
서북벽지구 : 박훈규, 강동근, 고길흥, 강영희, 이묘선, 송영희, 하재여
백록담임시본부 : 김용구, 김덕천, 김상수, 허성록, 이순희, 강지연
용진각지구 : 양하선, 이창욱, 고길홍, 이순자, 하재여, 서향자
개미등지구 : 고윤삼, 고진수, 이경서, 최순옥, 홍순옥
탐라제곡지구 : 박선흥, 신승행, 고인지, 채경은, 윤복자, 전계옥
등산입구지구 : 박훈규, 강동근, 강영희, 이묘선, 송영희, 하재여
관음사임시본부 : 김승택, 김덕천, 김상수, 허성록, 이순희, 강지연
전 구 간 : 이봉길, 김승택, 김태열

어승생임시본부 회원권 판매
회 비 200원 (입산료포함)
1. 기념페난트
2. 마 크 (제주시 청색, 서귀포 황색)
3. 프로그램
4. 입 산 증
5. 여자회원 ……… 타미나 화장셋트
6. 남자회원 ……… 한일소주 행운권
제1매표소 ……… 산장입구 아스팔트
1조 ……… 양하선, 이순희, 하재여 ……… 상설팀
2조 ……… 이창욱, 강지연, 윤복자
3조 ……… 김태열, 이묘선, 송영희 ……… 지원팀
4조 ……… 김승택, 이순자, 채경은
제2매표소 ……… 산장입구 수로
5조 ……… 고길흥, 강영희, 최순옥 : 보조팀
제3매표소 ……… 어승생계곡
6조 ……… 고윤삼, 최순옥, 서향자, 홍순옥
※ 각 단위산악회에서는 수시로 계획추진 상황을 본 연맹에 보고할 것. 끝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제주도지부
회장 안흥찬


1975년 6월 8일 한국 산악회 제주도지부가 한라산 우회를 중심으로 창립, 초대 지부장에 양후열씨가 선임되었다. 같은 해 8월 15일 광복 30주년 기념 성산일출봉에서 고산 수월봉까지 이어지는 한라산 동서종주등반을 실시하였으며, 제주 산악회, 오현등고회, 서귀포 백록산악회가 참가를 하였다. 같은 해 9월 제주도내 산악인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강습회가 김영도(대한산악연맹 부회장)에 의해 열렸다.

74년 이후 철쭉제에 참가하는 인파가 너무 몰려 백록담 정상부 훼손과 등반로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이 높다는 결론을 내고, 제주도 관계 당국과 철쭉제 행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했다.

1976년 4월 29일에는 철쭉제에 개최에 따른 제반 문제점을 논의하기 위해 김현우(회장 직무대행), 김승택, 김태열, 김용구, 정운홍, 현충남, 강갑길, 안흥찬씨가 참석한 가운데 임시이사회가 열렸다. 제 10회 철쭉제 행사 개최에 따른 대책으로, 도지사로부터 행사 개최 계획을 수정토록 하라는 협조 요청으로 인해 행사 계획 수정하여 소규모 행사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연맹산하 단체 및 정규산악단체를 대상으로 행사 실시키로 하였다.

1976년 8월 제주도내 산악인들의 친선을 도모하고 산악정보를 교류하기 위한 산악인의 밤 행사가 제주 적십자사 회관에서 개최되었고, 1977년 11월 27일 남원 산악회가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김택상씨가 선임되었으며, 1978년 2월 제주도 연맹 가맹 후, 성널 산악회로 개명했다.

 

1977년 10월 1일에는 굼부리 산악회가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이장오씨가 선임되었고, 1980년 5월 제주도 연맹에 가맹하였다.

1979년 1월 김승택씨가 제주도 연맹회장에 취임하였고 같은 해 5월, 제주 산악회 박훈규 회원이 북미최고봉 매킨리봉을 등정하였다.(고상돈, 이일교 대원 조난사망) 그리고 같은 해 8월에는 제주도 연맹 가맹단체에서 합동 해외원정 훈련을 지리산에서 실시하였으며 제주 산악회, 서귀포 백록산악회가 참가하였다. 같은 해 11월 1일에는 탐라산악회가 창립되어 초대회장에 서성옥씨가 선임되었고, 1980년 5월 제주도 연맹에 가맹을 하였으나, 1985년 연맹 탈퇴 후 해산하였다.

1970년대의 산악활동은 암벽 및 빙벽에 대한 기초등반이 주를 이루었으며 적설기에는 한라산 영실폭포,장구목일원,어리목골일원,삼각봉 일원에서 빙벽,설벽 등의 기초 및 종합등반이 실시되었으며 암벽등반은 광령계곡 어리목골선녀바위 영실폭포 탐라계곡 등에서 많은 등반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

1980년대는 한라산 등반인구가 폭발적으로 집중된 시기였으며 도내 산악계에서도 가장 활발한 산악 활동을 전개하는 시기였다. 도내 대학 산악부(제주대학 산악부, 제주전문대학 산악부, 제주 간호대학 산악부, 제주교육대학 산악부)와 고등학교 산악부(오현고등학교 산악부, 제주상업고등 학교 산악부, 표선종합고등학교 산악부) 등이 암벽 등반에 관심을 갖으면서 열심히 활동하였고, 각 단위 산악회별로 도외 등반도 본격적으로 이루어 졌다. 80년대초의 도외등반은 주로 설악산,지리산, 월출산등반을 하였으며, 한국등산학교에 입학하여 체계적인 등반교육을 이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광령 계곡 암장의 개발로 인하여도내 산악계에서도 거벽등반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스포츠 클라이밍의 도입에 많은 기여를하였다. 한편 타시도 연맹의 한라산 적설기 등반은 산악정보 교류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본격적인 해외원정등반의 꿈을 갖기 시작하였다.

 

1982년 제주대학 산악부 김성택씨의 안나푸르나 트래킹, 1984년 서귀포 백록산악회의 일본 북알프스 등정, 1985년 오현등고회 정용선씨의 에베레스트 서능 등반, 오현등고회 서봉준씨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1986년 서귀포 백록산악회 배종원씨의 K2 등반 등은 80년대 제주 산악계의 커다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5월 15일 굼부리 산악회가 제주도 연맹에 가맹했으며, 한국 설암산회가 주관하는 제 1회 산악인 친선 체육대회가 개최되었고, 1981년 4월 탐라 산악회가, 5월에는 창공 산악회가 도 연맹에 가맹을 하였다.
1982년 9월에는 제 1회 산악인 경보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최초로 제주도 연맹 회보인 한라산이 창간되었다.
한라산 창간호는 도내 산악계 소식을 알리고 산악정보교류를 위한 내용으로 창간되어 400부를 발행하였고, 창간호에는 연맹연혁 및 각 가맹단체 소개, 산악강좌 내용을 실어 9월 15일 각 단체별로 배부했다. 그리고 제 1회 산악인 경보 대회 및 제 3회 산악인 체육대회가 9월 11일부터 12일간 한라산 산 5림반 공터에서 열렸는데, 한라산 성판악을 돌고 오는(12Km) 제 1회 경보대회는 각 단체별로 1조(남3, 여1)씩 6개 단체가 출전하였으며 보행질서 및 산악예절(탐웍 긴급사태 발생 시 대처 및 수습, 시간)을 채점하여 우수팀 3팀을 선정 시상하였고, 서귀포 백록산악회가 우승, 표선산악회가 준우승, 제주산악회가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당일인 9월 11일 20시 30분부터 캠프화이어를 시작, 한국 설암산악회에서 준비한 다과를 들면서 도 연맹회장이 준비한 30여점의 상품을 추첨에 의하여 시상였으며, 12일 09시부터는 연맹 산하 8개팀이 출전한 축구 시합에서는 굼부리 산악회가 우승, 창공산악회가 준우승하였으며 줄다리기 경기에서는 창공산악회가 우승, 제주산악회가 준우승을 하여 9월 12일 17시에 시상식을 가졌다.

1984년에는 자유중국 기륭시 등산협회의 초청으로 도연맹회장 현충남, 서귀포 백록산악회의 양진홍, 양광순 김흥렬씨 이상 4명이 참가한 가운데 5월 14일부터 26일 동안 대만 옥산(해발 3,997M),
일본 북알프스 연봉(해발 3,190M)를 대상으로 해외원정을 하였으며, 안흥찬 명예회장이 한라산 묵화 1점을 협찬하였다. 그리고, 고 고상돈 묘역의 배수로(하수구)공사 및 복토공사(묘비 앞 100평), 조경 사업 등의 토목정비공사를 5월 13일부터 21일 동안하여 공사금액으로 890,000원이 사용되었다. (공사참조금:서귀포 시청 보조금 700,000, 작업협조 단체: 제주산악회, 서귀포 백록산악회, 표선산악회, 굼부리산악회, 산방산악회)
그리고, 개국시조인 단군 성조님께 평화통일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개철절 기념 산상제가 전도 산악인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월 2일부터 3일 동안 한라산 장구목에서 열렸다.

1985년 한라산산간학교 제 1기특별반이 수료하면서 제주도산악연맹의 절대적인 도약이 시작되었다. 한라산산간학교특별반은 제주도산악연맹을 이끌어 오는 지도층 산악인들이 총망라되어 산악운동을 체계적으로 선도하겠다는 절대적인 의지가 보인 과정이었다

안흥찬,현충남,윤성암,강갑길,양진홍,김현준,김홍렬,김대숙,배종원,김완수,고길홍,고상선,안영백,조성근,변영진,이경희,나영무,김봉원,정종림,이희재,강헌익,강성주,이종량,김창영,홍재우,김병수,김용구,송재용,정운홍씨 등 29명이 수료하였으며 전도산악단체의 임원들이 모범적으로 한라산산간학교 특별반 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의 5월에 열린 제 19회 한라산 철쭉제 행사에서는 산악활동에 공이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한라대상이 제정되어 김종철씨가 수상하였고, 도내에서는 안흥찬, 김승택, 김현우, 현충남, 김용구, 양하선씨 등이 수상하였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여 국위를 선양한 고 고상돈 대원을 기념하기 위한 재단법인
고상돈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고, 매년 5월 29일 한라산 1100고지 고상돈 묘역에서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1987년에는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를 위한 임시 이사회가 3월 28일 15시에 소산화랑에서 현충남, 안흥찬, 이기형, 강갑길, 양하선, 강동진, 김흥렬, 안영백, 고재일, 김근방, 양광순씨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며, 4월 17일 연맹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회에서는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로 협의 했으며, 현충남, 안영백, 김봉원, 김근방, 양진홍, 고재일, 홍재우, 서광진, 양광순, 김흥렬, 김수일, 강동진씨가 참석했다.
1988년 10월 29일부터 30일 동안 제 21회 대통령기 전국등산대회가 총 61개 팀(제주 20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한라산에서 열렸으며, 부산 파라다이스 비치 산악회(남자일반)가 대통령기를 수상하였다.

1990년대

1990년대에는 제주도 산악연맹이 본격적으로 해외원정등반을 실시한 시기이다.
한국 설암산악회 김용수 외 2명이 동계 일본 북알프스 등반, 제주 산악회 고상현의 초오유?시샤팡마 등반, 제주 대학교 산악부 서동춘의 유럽 알프스 3대 북벽 등반, 1992년 설암 산악회
동계 랑탕리룽(해발 7,234M) 남서능 초등, 1993년 제주 산악회 김균 칸텡그리 등정, 제주 산악회 임희제 에베레스트 등반, 1994년 제주 산악회 고성홍, 전양호, 문용성 맥킨리 등반, 제주대 산악부 신해심 중국 공가산 등반 등은 제주도 산악계에 해외원정등반에 기폭제가 되었으며, 각 단위 산악회별 해외원정추진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2년 제주대학교 산악부 매킨리 원정대는 등반 도중 양영수, 진성종, 홍성탁 대원이 실족사하는 대형 산악 조난사고가 발생하여, 도내 산악계는 물론 도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같은해 한국설암산악회 동계랑탕리룽원정대 김진현대원의 조난사가 발생 제주도 산악계는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1992년 11월 제주시 종합경기장 야구장외벽에 높이 12미터, 폭 6미터의 인공암장이 설치되었는데 제주도, 제주시의 적극적인 지원에 의해 제주산악인들의 숙원이었던 인공암장(오름마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인공암장(오름마당) 건립기념 및 스포츠 클라이밍 기술향상 및 홍보, 산악인구 저변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제 1회 회장배 스포츠 클라이밍대회가 1993년 4월 25일 일요일에 제주 오름마당(제주종합경기장내)에서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제주도연맹의 주최로 열려 100여명이 참가하여 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번 행사에는 대한산악연맹의 윤대표, 정승권씨 등이 많은 기술 도움을 주었으며, 제주산악연맹에서는 윤익제, 진창기, 김승범, 부상혁, 송희창, 장덕상씨 등이 심판교육을 이수하여 매년 대회를 이끌어 오고 있다.

 

1995년 제주산악회 문용성, 옥주봉(해발 6,178M)을 등정하였으며, 제주YMCA 산우회 김상조씨가 엘브르즈(해발 5,401M)를 등반하였다.

1996년 제주 산악회 전양호, 임희재, 정상수, 김기남씨가 매킨리를 등정하였고, 백록산악회의 오경아씨도 매킨리를 등정하였다. 그리고 같은 백록산악회에서 쿰부 히말라야 임자체를 등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제대 O.B산악회의 문성훈, 강성규씨가 탈레이샤가(해발 6,904M)를 등반하였고,
제주 산악회의 문용성씨가 충모강리(해발 7,048M)초 등정하고 또한 릉보강리(해발 7,095M)를 등반하였다.

그리고 1997년 제주대 O.B산악회의 강성규씨는 마나슬루(해발 8,163M) 시샤팡마(해발 8,013M)를
등반하면서 다시 한번 제주도 산악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1998년 제주대 O.B산악회의 강성규씨가 낭가파르밧(해발 8,125M)를 등정하면서 고 고상돈에 이은 8,000M급 등정의 쾌거를 이룩했다.

1999년 거산회 오동진씨가 칸첸증가를 등반하였고,제주도연맹 최초의 해외원정대인 `99 한국
초오유 원정대가 초오유를 등정하였으며, 제주대 O.B산악회의 강성규씨가 브로드피크(해발 8,047M), 칸첸중가(해발 8,586M), 마칼루(해발 8,463M)를 등반하였다.
`99한국초오유(8,201M) 원정대 범도민추진위원회가 99년 7월에 구성되어 추진위원장에 장정언(민주평통부의장이 선임 되었으며, 1997. 3. 19 구성된 해외원정등반 추진 특설분과위원회는 특설분과위원장 박훈규, 자문위원 양하선, 등반기획부장 진창기, 총무부장 정원석, 훈련부장 장덕상, 등반기획차장 임희재, 총무차장 권태수, 훈련차장 홍순용씨가 선임되었었다.
그리고 해외원정등반 추진을 위한 준비 일정으로는 1997. 5. 1 ~ 5. 31 동안 훈련대원 모집 및 훈련 계획서 작성, 대상 산 선정에 따른 자료수집이 이루어졌으며, 1997. 6. 1 ~ 6. 30에 대상산 선정 되었고, 1997. 6월중 발대식이 이루어졌다.

훈련은 월 2회 훈련(첫째, 셋째주)을 하고 훈련등반시 암벽장비 필히 지참하고, 훈련대원들의 배낭 무게는 20kg 이상이었으며, 훈련기간 중에는 금주, 워킹훈련 등반시 훈련대원들을 격려 할 수 있도록 가맹단체 참여를 독려하는 훈련 원칙이 적용되었다..
훈련계획으로 3월~11월(하계)에는 첫째주(토요일 오후)는 10km 구보, 셋째주(토,일요일~1박2일)는 암벽훈련 또는 워킹등반이 이루어졌으며, 12월~2월(동계) 사이인 12월의 첫째주(토요일 오후)는 10km 구보를 하고 3박4일의 설상훈련을 하고, 1월의 첫째주(토요일 오후)는 10km 구보를 하고 3박4일의 설상훈련을 하고, 2월의 첫째주(토요일 오후)는 10km 구보를 하고, 도외에서 5박6일동안 빙벽훈련을 하였다. 그리고 등반특위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특별훈련이 연2회에 한해 가맹단체 합동 도외등반(추진)과 병행하여 실시하였고, 등반대 출발 1개월전에는 합숙훈련을 하였다.

`98. 1. 30~2. 1 (2박 3일)동안에는 전국산악 구조대 합동훈련이 YMCA야영장-관음사, 어리목-장구목, 용진각일대-어리목 등 한라산 일원에서 실시 됐다.
제주도에서는 박훈규, 장덕상, 정원석, 권태수, 부상혁, 김상조, 전양호, 강성규, 오경훈, 이봉근, 문봉수, 오경아, 김기남, 오승헌, 문성훈, 김영용, 정상수, 신해심씨 등이 참가하였으며,
`98. 8. 8 연맹사무실에서 이사회를 개최하여 1차원정대 대원 장덕상, 강경호, 홍태유, 부상혁, 김상조, 박훈규, 오승헌, 고현신, 오희준, 임창현, 김기남, 문봉수, 오경훈, 문성훈, 강성규씨 등 15명을 선발하였다.

`98. 10. 29에는 연맹사무실에서 `97 전남대 초오유 원정대장 이정옥의 초정교육이 있었으며 박훈규, 장덕상, 정원석, 부상혁, 김상조, 문봉수, 오희준, 오경훈, 문성훈, 임창현, 고현신, 전양호, 오승헌씨 등 13명이 참석하였다.
`99. 3. 1에는 이사회연맹사무실에서 1/4분기 이사회 추진위규정 개정 심의 및 의결이 있었으며 원정대장 박훈규, 등반대장 장덕상씨가 참석하였다.
`99. 5. 11에는 연맹사무실과 해선횟집에서 초정교육 원정회의로 전주 우석대 OB회원 한왕용의 초청교육이 있었으며, 출국 일정을 1주일 연기하기로 하였고, 식량은 현지식으로 C1까지 사용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참가자는 박훈규, 장덕상, 문용성, 김상조, 문봉수, 임창현, 오경훈, 오희준이며
`99. 8. 7 원정대 발대식이 우근민 제주도 지사 등 내외귀빈 및 산악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제주도 체육회관에서 성대히 개최되었다.
`99. 8. 20 원정대는 제주를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하였으며, 그 다음날인 `99. 8. 21에는 서울을 출발하여 태국의 방콕을 경유, 네팔에 도착하였다.
`99. 8. 30 원정대는 카라반을 시작하여 9. 6에 중간캠프지를 건설하였으며 9. 26에 강성규, 오희준, 김상조, 문봉수가 정상 등정에 성공하였다.
`99. 10. 2 네팔에 도착한 원정대는 10. 6에 방콕을 거처 서울에 도착, 제주로 귀환하였다.

2000년대

2000년 제주대 O.B산악회 강성규, 서귀포 영천산악회 오희준, 한국설암산악회 김형우씨가 브로드피크(해발 8,047M)를 등정을 하였고, 제주 산악회 양하선씨가 킬리만자로(해발 5,895M)를 등정 (대한산악연맹 7대륙 최고봉 원정대)하였다. 또, 제주 산악회는 아콩카구아(해발 6,959M) 원정대를 원정기간 2002. 12. 25 ~ 2001. 1. 18 (25일간) 동안 원정하였으며, 제주대 O.B산악회 강성규, 서귀포 영천산악회 오희준, 한국설암산악회 김형우씨가 시샤팡마(해발 8,027M)를 등정하였다.

2000년 6월 도내여성산악인인 백록산악회 오경아씨가 요세미티빅월등반을 함으로써 거벽등반의 꿈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2001 제주대 O.B산악회 강성규, 서귀포 영천산악회 오희준, 한국설암산악회 김형우씨가 로체(해발 8,516M)를 등정하였으며, 제주대 O.B산악회 강성규, 서귀포 영천산악회 오희준, 한국설암산악회 김형우씨가 K2(8,611M)를 등정하였다.

그리고, 제주도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마라톤 대회가 도민체력 향상과 산악문화 보급 및 발전, 자연사랑을 통한 건전한 사회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제 1회 제주산악마라톤대회를 2001년 4월 28일(토) 오전 10시에 제주시 절물자연휴양림 및 거문오름 일원에서 (사) 대한산악염맹 제주도연맹 주최로 열려, 선수?임원등 5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대회를 마쳤다.

 

2001년 8월에는 제 3회 전도 오리엔티어링 제주대회가 열렸는데, 경기 종목으로 초등부는 3인 1조
(남녀구분-스코어 경기방식), 중등부는 2인 1조(남녀구분-스코어 경기방식), 고등부는 2인 1조
(남녀구분-스코어 경기방식), 일반부는 2인 1조(남녀혼성 3개부분-포인트 경기방식), 장년부는
2인 1조로 일반부와 동일하였으며, 가족부는 가족 3~4명이 대상로 18세 미만 청소년 1~2명과 성인이 함께 참가를 하였으며(유아 및 초등부는 가산점 부여), 대회는 총 500여명이 참가하여 열띤 경쟁을 벌였다.

2002년에는 서귀포지역 3개 산악회(서귀포 백록산악회, 영천산악회, 거산회) 합동등반대인 2002 제주 안나푸르나 I봉(8,091M) 원정대(대장 오희준, 부대장 김오섭, 의료 오동근, 장비 오경훈, 식량 오동진, 포장수송 현성윤)가 결성되어 많은 제주도민들의 성원을 받으며 장도에 올랐다. 2002 제주 안나푸르나 I봉(8,091M)은 3월 11일 출국, 5월 15일 오희준 대원과 셀파가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제주대학교 산악회 매킨리 원정대(단장 장덕상, 원정대장 오문필, 등반대장 강성규, 식량 신해심, 수송 오창현, 장비 송영학, 의료 오남종)가 5월 26일 맥킨리(해발 6,194M)를 등정하였고, 6월에는 제주적십산악안전대 엘부르즈(해발 5,642M)원정대(양하선, 대장 부상혁, 김상조, 김대량, 강석표)가 등정에 성공하였으며, 8월에는 제주 산악회 킬리만자로(해발5,895M)원정대(대장 박훈규, 김용구, 양봉훈, 전양호, 나범석, 이승학)가 등정에 성공하였다.

알림 0